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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철학에는 인간을 소우주, 작은 우주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요. 고대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도 대우주와 소우주 개념을 이야기했습니다. 규모에 상관없이 우주의 모든 단계에서 같은 양식이 재생산되며,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이론입니다.
명리학에서도 동양의 고전에도 인간과 우주가 닮아 있다거나 인간이 소우주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특히 인간과 우주를 모두 음양오행이 조화를 이룬 존재로 봅니다. 구체적인 내용에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동서양의 대표 사상 모두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탐구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중국 고전과 현대 천문학에서 나온 인간 소우주론을 살펴보겠습니다.
목차
- 《황극경세서》의 인간 소우주론
- 《태극도설》의 인간 소우주론
- 현대 천문학과 인간 소우주론
《황극경세서》의 인간 소우주론
중국 송나라에는 학자이자 시인인 소강절(邵康節, 1011~1077)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리철학(數理哲學)의 개념을 정립했으며, 우주의 시간 개념을 정리해 주장했습니다. 이 개념은 독일의 라이프니츠의 2차 논리(二次論理)에 힌트를 주었을 만큼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하는데요. 소강절의 대표 저서인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는 우주 및 만물의 원리를 밝히려는 시도가 담겨있습니다.
중국 고대에 우주와 세계의 법칙을 밝히고자 저술된 《주역》에는 천지만물의 생성원리가 간단하게 언급되어 있었습니다. 소강절은 이 부분에 착안해 우주 운행의 법칙을 숫자를 통해 탐구하고자 했습니다. 자연계의 생성과 순환의 원리를 수학과 논리로 풀이함으로써, 철학 사상과 수학적 정신을 결합하려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로써 전체를 파악하고, 전체를 하나로 꿰뚫는 동양철학의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소강절은 음양은 사상으로, 사상은 팔괘로, 팔괘는 육십사괘로 발전해나간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에서 시작해서 둘이 나오고 둘인 음양에서 오행이 나오고 오행에서 다시 만물이 나와 생장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는 다시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것이 역의 순환 원리입니다. 이러한 순환의 과정은 우주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또한, 소강절은 우주의 순환주기도 지구의 순환주기처럼 사계절로 순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구의 공전 주기인 1년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우주의 순환주기를 계산했습니다. 즉, 지구의 1년 12달이 4계절로 돌아가는 원리를 확대해 천지의 일원수(一元數)인 129,600년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는 우주의 법칙인 '원회운세'가 천지개벽의 틀이라고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우주의 1년인 129,600년은 사람의 호흡수와 맥박수와 같다고 합니다. 사람의 1분당 호흡은 18회, 맥박은 72회 정도이며, 이 두 수를 합하면 90이 됩니다. 1시간은 60분이므로 90×60=5,400번이 되고, 하루는 24시간이므로 540×24=129,600번이 됩니다. 이처럼 소강절의 인간 소우주론에서는 두 객체가 같은 원리와 주기를 갖고 움직인다고 보았습니다.
《태극도설》의 인간 소우주론
중국 북송의 사상가 주돈이가 정리한 《태극도설(太極圖說)》은 우주의 생성, 인륜의 근원을 논한 249글자의 짧은 글입니다. 그러나 후대의 해석이 덧붙여지며 성리학에서 아주 중요한 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주돈이는 유학자였으나, 불교와 도교에도 깊은 조예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주역》과 《중용》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주돈이는 우주의 본체를 규명한 《태극도설》을 완성했습니다.
《태극도설》의 내용은 태극, 오행, 건곤감녀, 만물화생 등 우주의 전개를 다루고 있습니다. 소강절이 황극경세서에서 주장한 내용과 유사하게 태극이 음양으로, 다시 오행으로 발전하다가 다시 역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시작점은 끝과 닿아있으며, 만물이 순환한다는 단순하지만 절대적인 이치를 정리한 것입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만물 중에서 사람을 음양오행의 조합이 가장 우수한 존재로 기술한 점입니다. 사람들 중에서도 덕을 쌓아 일정 경지에 오른 성인은 천지의 작용과 더욱 조화를 이룬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일월의 운행이나 시간의 순환까지도 성인의 작용에 호응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역시 인간과 우주가 닿아 있으며 같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본 점에서 인간 소우주론의 한 예시입니다.
현대 천문학과 인간 소우주론
1985년에 하버드 스미스소니언 천체물리학센터의 과학자들은 신기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밝혀진 우주의 별자리 데이터를 슈퍼컴퓨터에 입력한 결고, 인간의 형상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 연구 결과는 큰 화제를 모았고, 1986년 '뉴사이언스'라는 과학 전문 매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주 및 은하계의 구조가 인간의 뇌 및 신경전달물질과 매우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인간의 뇌를 구성하는 뉴런 네트워크와 우주를 구성하는 은하가 모두 전체 공간 질량의 30%만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70%는 뇌에서는 물, 우주에서는 암흑에너지와 같이 수동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또한 뉴런과 은하는 각각 가는 실과 마디로 스스로를 배열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중심이 되는 노드를 기준으로 다른 노드들이 군집해있는 점도 유사하며, 각 노드의 평균 연결 수도 비슷하다고 합니다. 아직 뇌과학과 천문학 모두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나,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한 이탈리아 볼로냐대와 베로나대의 연구진들은 실제로 뇌와 은하에 비슷한 네트워크 역학이 적용되었을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지금까지 정리한 인간 소우주론을 살펴보면, 우주와 인간이 정말로 통해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주를 공부하다 보니 이처럼 인간이 얼마나 우주적 존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인 인간 개개인은 모두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나 자신과 남을 모두 귀히 여기는 마음가짐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