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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명리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명리학이란 사람이 태어난 연(年), 월(月), 일(日), 시(時)의 네 간지(干支)에 근거해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아보는 학문입니다. 네 개의 간지를 네 개의 기둥이라고 하므로, 사주학이라고도 부릅니다. 명리학에는 우주의 다양한 원리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포함되므로 공부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중에서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은 바로 중국 명리학의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고대 명리학의 역사 

명리학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그 기원을 알려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명리학을 분석하는데 쓰는 십간(十干) 및 십이지(十二支)는 중국 고대의 상(商) 나라 시대부터 나타났습니다. 한나라 시대부터는 하루 24시간을 12지로 구분해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연월일시의 사주 개념이 공고화되고 더욱 널리 퍼졌습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간지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세계를 나무, 불, 흙, 쇠, 물의 다섯 가지 요소로 설명하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説)이 확산했습니다. 이에 따라 간지와 음양오행설을 결합해 길흉화복을 점치는 명리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송 시대 명리학의 발전

명리학이 현대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중국의 당나라 때입니다. 당나라 궁궐에서 관리직을 맡았던 이허중은 개인의 사주를 근거로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방법을 정리했습니다. 사람의 출생 시기를 음양, 오행, 천상, 천상 등의 요소와 결합해 운명을 계산하는 이론이었습니다.

 

이어서 송나라 대에는 서자평이라는 인물이 나타나 고대 명리학을 집대성하고,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사주에 오행의 상생(相生), 상극(相剋) 이론을 결합했고, 《낙록자삼명소식부주(珞琭子三命消息賦註)》, 《옥조신응진경주(玉照神應眞經註)》, 《통명부(通明賦)》 등 다양한 저서를 남겼습니다.

 

서자평이 명리학을 정리하기 전, 당나라 때 까지는 간지와 오행이 배재한 채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12개의 별만을 사람의 사주와 연관해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서자평이 여기에 오행의 상생상극설을 더함으로써, 더 자세한 해석이 가능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서자평은 명리학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고, 명리학의 양적 및 질적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명리학의 역사

 

서자평의 명리학 해석은 한반도에도 흘러 들어왔습니다. 특히 색깔을 넣은 그림으로 도해하고 한글로 번역한 《당사주(唐四柱)》라는 책이 유행했습니다. 서민들 사이에서 이 책이 유행한 이유는 가족관계, 직업, 길흉, 재산 문제 등 일상 생활과 직결된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시기별로 나누어 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고, 특히 알록달록하게 채색된 그림만 보아도 길흉화복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민간 사회에 폭넓게 유포된 것은 물론, 이후 조선 명리학이 정립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송 이후의 명리학 역사

당송 이후 남송 시대의 서승(徐升)이라는 인물은 서자평이 집대성한 자평법을 계승해, 일간(日干)을 중심으로 생극 관계를 분석하는 육신법(六神法)의 이론을 체계화하여 발전시켰습니다. 서승은 서공승(徐公升)또는 서대승(徐大升)이라고도 불리며, 《삼명연원(三命淵源)》, 《정진론(定眞論)》, 《연해(淵海)》 등의 책을 썼습니다.

 

명나라 때에는 명리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연해자평(淵海子平)》이 등장했습니다. 당금지라는 인물이 서승이 저술한 《연해(淵海)》와 그에 대한 주석집인 《연원(淵源)》을 합해 쓴 책입니다. 이 책은 오늘날에도 자평법 명리학의 진수를 담은 최고의 고전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청나라 때는 여춘태(余春台)가 《궁통보감(窮通寶鑑)》이라는 책에서 명리학을 다뤘습니다. 이후 심효첨(沈孝瞻)이라는 사람은 《자평진전(子平眞詮)》이라는 책을 통해 오행이법 체계를 완성했습니다. 궁통보감과 자평진전은 적천수와 함께 여전히 사주명리학의 3대 고전으로 여겨집니다.

 

중국 천단 천체 관측

 

이후 중국 역사는 상당한 혼란기를 거치면서 사주 명리학이 지니는 의미도 크게 폄하되었습니다. 특히 중국에 공산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문화대혁명 시기에 명리, 점술, 문예, 사상 등에 대한 탄압이 가해졌습니다. 이에 중국의 명리학자들은 대만으로 피신하여 연구를 지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명리학의 전통과 의미가 재평가를 받으면서 이제는 다른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명리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명리학이 처음 탄생하고 발전한 중국에서의 명리학 역사를 간단하게 알아봤습니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에서 명리학의 역사, 기초, 원리 등을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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