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중국의 사주 명리학이 전파된 것은 늦어도 고려시대 말일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중국 대륙과 한반도 간에는 각종 지식 및 문화 교류가 활발했고,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이 들여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이전까지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고 기록해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다른 방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시대에 초점을 맞춘 한국 명리학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조선 초기 명리학 역사 우리나라 문헌에 남아있는 사주명리학의 최초 기록은 1401년 조선왕조실록입니다. 명리학은 조선 초기부터 국가와 왕실의 대소사에 깊이 관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본래 조선 건국 전 고려에는 서운관이라는 관청이 있어 천문, 역수, 측후, 각루 등의 일을 담당했습니다. 서운관은 조선 개국 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명리학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명리학이란 사람이 태어난 연(年), 월(月), 일(日), 시(時)의 네 간지(干支)에 근거해 사람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알아보는 학문입니다. 네 개의 간지를 네 개의 기둥이라고 하므로, 사주학이라고도 부릅니다. 명리학에는 우주의 다양한 원리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포함되므로 공부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중에서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은 바로 중국 명리학의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고대 명리학의 역사 명리학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고, 그 기원을 알려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명리학을 분석하는데 쓰는 십간(十干) 및 십이지(十二支)는 중국 고대의 상(商) 나라 시대부터 나타났습니다. 한나라 시대부터는 하루 24..